정착

정착

나에게 가장 어려운

하지만 언젠가 꼭 하고싶은 목표다.

새로운 곳으로 가다

한국에 있던 당시 내 이력서에서 성장과정을 언급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항상

“어렸을 적 많이 이사를 다녔던 것 때문에 어느곳을 가도 빠른 적응을…”

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 돌아켜서 생각해보면, 사실 저 말은 거짓말이다. 난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곳을 가도 빠른 적응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응이 느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학교 (초등학교X, 적고 보니 내 나이가…)를 다니던 시절에도 몇번 전학을 갔었고 난 그 때마다 오늘 새로 전학온 친구라고 인사를 하고 가장 뒷 번호를 배정받고, 가장 뒷 ( 혹은 남는) 자리에 앉아서 적응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새롭게 학기가 시작해도 어색하고 나처럼 수줍음 많은 국민학생은 학기초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참 어색하게 있었을텐데, 전학생은 혼자 새로운 곳에 가기 때문에 더 어색한 적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 역시 몇배나 더 어려운 정착의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 중, 고등 학교 때에는 먼 거기를 통학을 한 덕분에, 전학을 다니지 않았고, 새롭게 친구를 만들 필요 없이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를 갈 때에 나는 기숙사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정시 지원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숙사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특차 지원해서 합격을 하게 된다. 나는 19년 함께 살던 부모님 곁을 떠나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동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떠나온 교환 학생을 다녀와서 집에서 직장 생활을 몇년 하다가,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서 자취를 몇 년 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교환학생 다녀온 덕분에 외국에 자꾸 출장을 보내줘서 아프리카 대륙 빼고는 몇 주에서 몇 달씩은 새로운 곳 호텔에서 혼자 혹은 다른 출장자와 같이 살아보고 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학교에 적응하던 시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지금은 좀 활발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곳에 적응 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정말 오래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과 그 동네에 친숙해 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곳에 살아본 덕분인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곧 이사를 가겠지..?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본가에서 강남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출근 시간도 8시까지였고, 서울에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4년의 직장 생활이 지나고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수입이 좀 괜찮아 지자, 이번에는 전세를 얻어서 집을 좀 꾸며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게다가 항상 외국에 출장을 다녀서 좀 여유로워 보이는 (실제로 해외 법인에서 보았던 현지 직원들이 여유로웠는지는 모르겠다;;) 외국의 삶을 보고 나도 언젠가 이민을 가게 되면 이라는 단서가 항상 따라다녔다.

이런 생각들이 이사간 새로운 동네나 출장지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미 이사를 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언젠가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안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뭐든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뭔가를 배우거나 사거나 준비할 때에도, “곧 내가 정착 할 곳에 가게 되면 해야지” 라는 문장이 내 발목을 조금 잡아 당기는 역할을 했었다.

20대에는 정말 많이 미뤘고, 30대 쯤에서야 미루다 미루다 스노보드를 배운다던지, 살사를 배운다던지 원래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

요즘 내가 시드니에 대해서 느끼는 점은 3단계 쯤 와있는 것 같다.

1. 새로 가보는 곳

2. 출장지나 임시로 사는 곳 (사실 돌이켜 보면 임시로 사는 곳이 아니지만 떠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다)

3. 내가 사는 곳

4. 정착할 곳

1단계는 수백 곳 쫌 되겠고, 2단계도 정말 많았었다. 출장을 몇개월 가서 살아도 곧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잠시 사는 곳 쯤으로 느끼며 살았던 것 같고, 한국에서도 더 큰 집으로 전세를 옮겨야지 혹은 결혼을 하면 이사를 가겠지 하는 생각에 임시로 사는 곳 혹은 동네로 느끼며 살았다. 아직 더 큰집으로 옮긴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다..(눈물 좀 닦고…)

얼마전 브리즈번을 갔다 오는 비행기와 공항에서 “아 집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때 이 생각을 조금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몇달이 지나서 이렇게 적어보고 있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1년에 몇번씩 비행기를 타고 몇개월씩 살다 오기도한게 10년이 되었으니

한국 인천이나 김포 공항에 도착할 때, 항상 “아 집에 왔구나” 혹은 영어로 “Good to be home”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외국에서 일단 그런 느낌이 든 것도 처음이고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일단 부모님이 조금 멀리 계신다는 게 좀 슬픈 점이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자연과 조금 빨라진 퇴근 시간에 따른 여유

그리고 영주권을 땄으니 이번기회에 외국에서 신나게 살아보자는 생각까지 더해져서

일단 당분간은 떠날 생각이 사라졌다.

덕분에 정착이란 단어가 오랜만에 현실이 되었다.

여전히 난 역마살이 있는 사주에

어디든 떠나기 좋은 미혼에

어디든 일하기 좋은 IT 경력에

아직 짐이 캐리어 2개면 다 들어가는 관계로…

언제 또 새로운 곳에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 살고 있고 사실 내 집도 아니고 월세를 내고있지만

“여기가 내 집이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이 19살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 기숙사에 간다고 집을 챙겨서 나왔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고,

그런 기분이 나를 참 편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드니의 집 값은 나를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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